차라투스

게이샤는 웃지 않는다는데.... maybe, have to

차라투스 2012. 5. 16. 15:28

저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정치 이야기는 관두고 오랜만에 그림읽기나 해 볼까요? ^^

 

'웃음'이란 거,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하죠. 여러 동물 중에서 유독 얼굴 근육이 발달한 인간만이 웃을 수 있다는데, 한 번 웃으려면 얼굴 근육 231개가 움직여야 한답니다. 오래 전에 읽어서 좀 아득합니다만,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웃음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죠. <통섭>의 작가 에드워드 윌슨은 또 다른 그의 책에서, 형태상의 진화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웃음을 예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웃음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비웃음마저도 웃음에 속하는 거니까요. 인간의 첫웃음은 '자연적인 웃음'이라고 하더군요. 유아기에 엄마 젖을 먹고 만족스러움을 느낄 때 난생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웃게 되고, 이후 타인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서 '사회적인 웃음'을 배우게 된다더만요.

 

이러한 '사회적 웃음' 중에는 '슬픈 웃음'도 있죠. 장례식장에서 참배객에게 보여주는 미망인의 미소, 지금 막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가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아보려고 지어보는 미소 등등등.   그런 '슬픈 웃음'이 슬쩍 드러나는 그림 하나 소개합니다. 물론, 제 기준으로 슬픈 거고, 화가나 모델이 의도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당포에) 저당잡힌 아내의 목걸이를 찾아줄 수 있겠나?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걸어주고 싶어서 말이세"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의 아내 카미유 모네가 지독한 가난 속에 허덕이다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린 바로 그 날, 모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조강지처를 고생시킨 무능한 남편으로서, 생전에 아내가 즐겨 하던 목걸이를 시신에나마 걸어주고픈 안타까움이 베어나죠. 눈물 많은 도종환의 시 "접시꽃 당신" 이미지 정도를 떠올리면 될 거 같네요.

 

 

 

모델을 섭외할 여력이 없었던 모네는 아내 카미유를 모델로 해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본 여인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232 X 142 cm>라는 이 그림은 이전에도 딴 글에서 올린 적이 있죠. 일본 화풍 특유의 평면적인 구성과 화사한 색체가 잘 드러나있습니다. 작품은 화사합니다만 저 그림에는 모네 부부의 곤궁함도 함께 묻어있죠.

 

작품이 팔리지 않아 궁핍에 시달리던 모네는 어느 날 생각했답니다. 인상파 특유의 거친 풍경화보다는 이런 깔끔하고 화려한 일본풍 인물화가 더 잘 팔릴 거라구요. 모네의 예상은 적중하여 경매에서 꽤 높은 가격에 매매되었고, 모네 가족의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건 그림책에 자주 언급되는 일반적인 이야기고요.  제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물론 좀 다른 거죠. ^^

 

 

업무 관련으로 일본 갔다가 관광일정에 포함된 교토 (도쿄가 아닌 일본의 옛수도 교토^^)에 잠시 들렸을 때의 일입니다. 교토의 명물 중 하나가 바로, 아직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게이샤 (마이코) 문화죠. 술파는 기생이 아니라, 일종의 종합 엔터테이너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혹자들이 자꾸 우기기도 하는 바로 그 게이샤요.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그네들의 흰 분칠 위로 드러나는 '무표정' 이야말로 그네들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일행들과 함께 교토의 저녁을 즐기다가, 우연히 전통 가옥 골목길에서 빠져나오는 게이샤를 만났습니다. 우리 일행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그녀에게 함께 사진찍기를 요청하는 등, 화사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죠.

 

근데, 그 와중에도 그녀는 웃거나 찡그리거나 하는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더군요. 마치 인형을 보는 듯 했습니다. 동행하던 싱가폴 지인에게 농을 걸었죠.

 

"쟤들은 원래 표정이 없나 봐?"

 

그랬더니 그 싱가폴 여자, 딱 잘라 답하더군요.

 

"maybe, have to" ("아마 그래야만 할 걸?) 

 

게이샤들은 그들의 고급/전통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무표정을 유지한다는 뜻이었겠죠. 아니,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뜻이었겠죠. 고객 앞에선 웃겠지만, 외부에선 웃지않는다는 그네들의 규칙을 지켜야 했을테니까요.

 

 

다시 모네의 작품으로 돌아가죠. 카미유에게 화려한 기모노를 입혀놓으니 무척 이쁘긴 합니다만, 그리고 카미유가 그림속에서 웃고 있긴 합니다만, maybe, had to ...... 아마 그래야만 했을 겁니다. 웃어야만 했을 겁니다. 웃지 않아야만 하는 게이샤와 달리 카미유는 웃어야만 했을 겁니다. 당장 배고품을 채워 줄 빵값이 필요했을테니까요. 그러려면 기왕이면 웃는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야 했을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저 기모노 입은 카미유의 미소를 보면 전 좀 어색한 뭔가를 느낍니다. 이 글 시작하면서 썼던 그런 '슬픈 웃음' 한 자락을 보는 듯 해서요.

 

역시 카미유가 모델인 모네의 대표작 <파라솔을 든 여인 (1875, 100 X 81cm)>을 덧붙입니다.

 

 

기모노 그림의 이미지 때문이어서인지 몰라도, 바로 윗그림의 카미유 얼굴 위로 구름 한 자락이 살짝 걸쳐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그래서 좀 더 서글퍼 보이진 않나요? (아닌가? 저만 그렇게 느끼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