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쎈 聖母 3/3 - 마르코 폴로가 무서워서 ..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입니다. <3명의 목격자 앞에서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성모 마리아> 라는 제목이 붙어있죠. 이 그림을 읽으려고 서론이 저리 길었습니다.
우스개 이야기부터 하나 하죠.
기독교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2개의 큰 사건은 '종교 개혁'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랍니다. 종교 개혁 이후 성경이 파격적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이랍니다.
가톨릭에서 성경 읽기를 금지시키진 않았습니다. 다만, 구태여 권유하지 않았을 뿐이죠.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 누구나 쉽게 성경을 읽고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해석이 가능해졌고, 이는 결국 수많은 종파로 갈라질 지금의 개신교 양태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 거죠.
가톨릭에서는 성경의 문구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지로 만들어 선교하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다른 대륙으로 떠날 때 성경보다 더 많이 챙긴 것은 그 이미지를 활용할 제례 용품이었습니다. 거기에 성모 이미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하튼, <힘 쎈 聖母>가 등장하는 와중에 이상한 이미지가 끼어듭니다. 예컨대 이런 이미지요.
구태여 성모를 묘사한 건 아니라 하더라도, 뭔가 얄궂은 느낌을 줍니다. 성모의 이미지를 구길만한 이미지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거죠.
또 다른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그나마 지킨 건 "히틀러"랍니다. 유럽이 진짜배기 르네상스를 맞이할 즈음에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관심은 '종교'에서 '헤게모니'로 돌아섭니다.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프로이트까지 일신교의 허점을 파고 들기 시작하던 그런 분위기를 급격히 식어버리게 만든 거죠. 히틀러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은 몇몇 사상가/화가들이 있었습니다. 미술사에서는 이 화풍을 다다이즘 (Dadaism)이라 부릅니다. 반(反)문명, 반(反)전통의 예술 운동입니다. 서양 미술사 통틀어 다다이즘만큼 파격적인 화풍은 없었습니다. 반(反)이란 표현에서 느껴지듯이 아나키즘 등의 혁명적 사상과도 맞물려 있죠. (딱 하나의 화풍만 꼭 찝어서 깊게 공부할 기회를 준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망설임 없이 다다이즘을 택할 겁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유럽 예술의 변방 스위스에서 시작된 다다이즘 그 자체의 생명은 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며 후세로 이어지죠. 그 중 하나가 초현실주의입니다. 이 연재글의 주인공인 막스 에른스트가 이 시기에 등장합니다.
"반(反)문명, 반(反)전통"라는 묘사에 어울리게 아주 거친 방식으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합니다. 공격을 가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는 거죠. 그네들은 꽤나 깊게 토론하며 그 역린을 찾아냅니다. 그게 바로 '성모'였던 거죠. 그리고, 그들은 그 현장을 지켜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3명의 목격자 앞에서 ....> 입니다.
동방박사 대신에 등장한 저 세 사람은 에른스트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입니다. 저 현장을 기록하고 후세에 전파하겠다는 의지를 일부러 드러내고 있습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인식하던 기독교적 세계관을 '해체'시키고 재구성코자 하는 의지가 역력합니다. 아래의 부분 그림에서 보이듯이 아기 예수로부터 후광도 해체 시켜버렸네요.
에른스트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의 화가들 상당수가 이런 '해체'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달리도 그 중 한 사람이죠. 달리는 아예 성모 그 자체를 해체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당당히 보냈습니다. 교황청으로요. 교황에게 일종의 선전 포고를 한 거죠. 교황청이 얼마나 짜증나게 대응했을 지 짐작 가시죠?
이렇듯 서구에서 성모의 이미지는 여러 단계로 변화를 거듭하며 해체의 과정을 걷습니다. 지금의 바티칸은 성모의 이미지 그 자체에 예전만큼 분노하거나 거칠게 대응하지 않습니다. 많은 부분을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끝끝내 가져갈 강력한 제례적 이미지 몇 개에 대해선 오히려 더 강력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최근 워마드에 의해 저질러진 "성체 훼손" 사건에 반응했던 가톨릭의 입장이 대표적인 사례겠죠.
나중에 기회되면, 가톨릭에서 (이미지와 더불어 매우 중요시하는) '제례'가 어떻게 그림으로 재현되었는지 썰을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 마무리 합니다.
뱀다리) 흠미로운 건, 저런 이미지화에 강력 반발했던 개신교에서도 집착을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서두에서 종교개혁으로 인해 '성경'이 파급적으로 보급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초창기 성경의 인쇄 과정에도 해프닝이 많습니다. 인쇄업자가 행여 조금이라도 오탈자를 냈을 경우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시기가 있었죠. 성경 문구 해석이 달랐다는, 딱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개신교도(칼뱅주의자)들에 의해 화형을 당했던 시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