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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山

율군, 미국 초등학교 적응기(2)

9월 20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결국 마무리짓지 못하고 30일로 연기했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아니 그런 일이 있으니 오히려 이런 잡문 쪽으로 더 손이 간다. 한심하다.


율군, 미국 초등학교 적응기(2)
 
일주일 쯤 전(9월 13일), 수업 시간 중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왼쪽 손목이 아파왔고, 그 다음 날에는 점심시간에--전날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까닭 없이--갑자기 1~2분 가량 숨이 막혔다고 한다. 두 번 다 학교 사무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는데, 그 치료라는 게 아픈 부위에 아이스 팩을 대주는 것. 이 학교는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아이스 팩을 붙여주는데, 지난 학기에 다른 애와 부딪쳐 무릎을 다쳤을 때도 아이스 팩을 받았던 터라 졸지에 아이스 팩이 세 개나 생겼다.

13일, 애를 데리러 갔다가 붕대를 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스 팩을 댄 손목에 휴지를 칭칭 감았던 것인데, 멀리서 봤을 때는 마치 깁스를 한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손목이 아플 수도 있나 싶어 살짝 걱정했지만 통증이 점점 약해진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바로 다음 날, 이번에도 역시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숨이 막혀 헉헉댔다고 하니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인터넷 검색전문가인 마루님이 자판을 열심히 두드린 결과, 이름도 생소한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찾아냈다. 애를 재운 뒤 이곳저곳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공황장애’ 증상에 관한 설명들을 찾아 읽었는데, 이틀간에 있었던 애의 증세를 보고 공황장애를 의심하는 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라는 결론에 도달(그 뒤, 오늘까지 손목만 계속 좀 이상하다고 할 뿐 다른 증상이 없어서 안심하고 있는 중).

우리가 애의 일에 이런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틱’ 때문이다. 틱과 공황장애의 연관성을 잠시 동안 우려했던 것.

미국에 올 때도 제일 걱정했던 게 애의 틱이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혹시 틱이 재발할 경우,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왔다. 더 심해지면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고. 미국의 수많은 도시 중 하필이면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이곳을 제 발로 찾아온 이유 중 하나도 애의 틱이 걱정되었기 때문. 기후가 좋고 주거환경이 쾌적하기 때문에 틱을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 있었다. 오자마자 교회에 간 것도 틱 때문이었다. 우리가 정착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독실한 신자인데, 그 분 말씀이 교회에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또래 친구들이 있으니 애가 처음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뒤 2달 정도 교회에 같이 다녔지만 결국 우리 부부는 신도이기를 포기, 이에 반해 애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계속 다니기를 고집,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는 중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후 2주 가까이 집에서 빈둥대는 ‘현지적응’ 기간을 거쳤다. 3월 초부터 학교에 나갔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그 이후 쭈~욱 잘 지내고 있다. 틱도 약한 음성 틱 증상만 간간이 보일 뿐 특별히 심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책(한글책이든 영어책이든)을 소리 내어 읽으면 발음의 강약이 조정 안 되는 특이한 증상은 계속 되고 있지만, 이건 남의 눈에 확 띄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하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영어를 아예 못하고 애가 아주 민감하다는 말을 미리 교육청에 해둔 덕분에, 게다가 운까지 겹쳐서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3학년 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래는 4학년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데 교육청과 학교에서 애의 사정을 헤아려준 것.

3학년 과정을 다닐 때에는 20명쯤 되는 반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애가 3명이나 있어서 바로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또 그 애들 덕분에 영어에 대한 부담도 크게 줄었던 것 같다. 필요할 때는 그 애들이 ‘통역’을 해주니 대충 눈치로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덕분에' 영어는 빨리 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낸 경험이 있는 지인들로부터 애들은 3개월이면 ‘영어가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뒤, 이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는 ‘그냥 놔둬도 6개월이면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3개월은 물론 6개월이 지나도 ‘영어가 되는’ 일은 아직 먼 것 같았다. 그 분들의 애들과는 물려받은 유전자가 다른가보다 하고 지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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