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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山

이 돼먹지 못한 인사는 누구일까요?

"애초에 처제가 우리집에 오게 된 것은 큰새끼의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조건에서 온 것이고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가지고 와야 한다는 그녀의 조건에 무조건 찬동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큰새끼가 전학을 해 들어간 시내의 일류학교---아, 일류학교란 얘기를 하지 마라! 학적보 이동---동회 서기와의 사바사바---학교장의 거만---담임 선생의 영국지 양복---2천원---6학년 전학 성공---시험 성적 30점---산수 52점---낙망---신경질---구타! 또 구타!

결국 처제는 '나는 능력이 없어요' 하고 기권하고 말았고, 내가 큰새끼의 과외공부를 맡아보게 되었다. 하기는 과외공부선생의 월급이 한 아이당 5천원이라고 하니 내가 5천원벌이를 하는 폭이라 여편네는 좋아한다. 아직도 처제의 피아노는 계속 되고 있다. 오늘 저 아이가 저렇게 줄기차게--이제 좀 고만두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 세기 전에 어느 인사가 적은 글쪼가리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인사는 누구일까? 아새끼를 "일류" '초등학교에 보내기위해 "사바사바"와 '와이로'를 마다하지 않고, 게다가 공부 못하는 아새끼를 "구타"까지 하는, "여편네는 사불여의하면 마구 치고 차고 할 수도 있지만" 처제는 그럴 수가 없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처제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이를 악물고 참고 있"다고 하는 이 돼먹지 못한 인사는 과연 누구일까? 이게 오늘의 퀴즈.

이 사람 글이 재미있어 고등학교 2학년 때 시험기간 중 줄창 이 사람 책만 읽었던 기억이 난다(사실 이 사람 글이 재미있어서, 그 글에 푹 빠져서 그랬다기보다는 시험을 방기하는 행위를 다른 무언가로 보충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때, 시험지를 받자마자 문제도 읽지 않고 국어는 1, 수학은 2, 영어는 3, 이런 식으로 답을 적어냈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렇게 시험을 내팽개쳤거만 꼴찌는 안 되더라. 아마도 끝에서 서너번째 점수를 받았던 것 같고, 담임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식으로 쳐다보다가 부모님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했고, 우리 부모님은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받아주셨고....... 이 사람 글만 읽으면 그때 그 일이 떠오른다. 나로서는 어린 한때, 아주 짧았던 '일탈'이었던 셈. 벌써 30년 전인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 그 '사이'를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 어쩌다가 보니 지금, 어쩌다가 이렇게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요즘 일하다가 지겹거나 졸릴 때 이 사람 산문을 한 두편씩 읽고 있는 중이라 적어봤다.

다들 잘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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