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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山

[펌] 김예슬 관련 글 두 편

 

<시사IN>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린 김예슬 관련 글을 퍼온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중 한 명인 박권일은 [텅 빈 기표가 된 '김예슬 선언'](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81)에서 김예슬의 말과 글에 담긴 사상이나 감성은 "래디컬한 게 아니라 낭만적"이며, 그의 태도는 "사회운동가적 태도가 아니라 종교인적인 태도"라 하네. 그래서(?) 그의 말과 글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게 필요하다네. 그게 '김예슬 선언'을 텅빈 기표가 되지 않게 만드는 길이라는 게 그 사람 생각인 듯하고.  

 

김예슬이 쓴 책을 보면 그런 측면이 있지. 그런데 그게 왜 문제인지, 그게 왜 "정면에서 비판"해야 할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 "낭만적" 감성으로 "종교인적인 태도"를 가지고, "'투쟁'과 '연대'" 대신 "'희생'과 '나눔'"으로 사는 삶도 있는 것이고, 그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거늘..... 그런 게 제대로 된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단단히 걸으면 되는 게 아닌가. 요컨대 이건 "정면에서 비판"하는 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길을 만드는 것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은 것. 김예슬이 '88만원 세대 담론'을 비판한 게 마음에 걸렸던 건 아니겠지.

 

엄기호가 쓴 [김예슬 읽기, 속물과 동물 사이 어디쯤](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772)은 '김예슬 선언' 자체가 아니라 김예슬 선언을 둘러싼 담론의 균열에 주목하는 글이네. 여기서 "‘사건에 대한 철학’"을 개시하자는 주장을 하는 듯하고. 요즘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이런 식의 '문화비평'은 내게는 아직 난감하네. 우리 모두 "속물"도 넘어 "동물"이 된 마당에 거기에서 도대체 어떤 행위가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인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적 태도'도 다시(!) 부상할 수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하여간, 계속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