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발제'를 한다. 그런데 내 '발제'는 그림도 없고, 사진도 없고, 그저 지루한 글일 뿐. 그것도 얼마나 길게 늘어날 지 모르니, '흥미진진'과는 거리가 멀 터. 이 점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
<경계도시 2>를 봤다. 애 낳고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다. 그러니까, 10년 만이다.
인터넷을 뒤져 상영 중인 영화관을 찾았더니, 두 군데 곧 이화여대 안에 생긴 영화관과 홍대 앞 <상상마당>이라는 곳에서 아직 하고 있었다. 앞의 영화관은, 이제 대학 공간 속에도 장사꾼들이 득실거리게 된, 최근 대한민국의 대학들에서 유행하는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 흔쾌히 가기에는 영 찝찝한 곳. 대학 바깥에 나가서 볼 걸 안에서 볼 수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하는, ‘편의’를 기준으로 놓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제될 것도 없겠다 싶다. 그런 건축물들이 대학 공간 안에 들어서면서 대학의 환경이 바뀌고, 그 환경에 친숙해지는 사람들의 감각이나 정서도 바뀔 것. 자본의 입장에서는 참 탁월한 선택이다 싶다. 일정한 소비자가 항상 확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할 터이니 말이다.
<상상마당>이란 곳도 나 같은 촌놈에게는 조금 생경한 공간이었다. 대표적 자본 중 하나인 케이티에서 운영하는 곳인 모양인데, 지하 4층에 작은 영화관이 있고, 인문학 강좌를 하는 공간, 북 디자인 작품 전시 공간, 공연 공간, 자료실 등등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문화적 교양을 찾는 젊은이들의 고상하고 세련된 취향과 감각을 배려한 공간을 자본이 만들어준 것인가. 자본에게 참 감사할 일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곳저곳에 올라있는 글들을 몇 편 봤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속을 보여주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자기성찰을 강제한다는 식의 글들이 많았다. ‘진보진영’ 속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으니, 그런 문제가 내 문제일 수는 없다. 그래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송두율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그 당시 잠깐 관심을 가졌을 뿐 그 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송두율 교수의 글을 본격적으로 읽은 적도 없었을 뿐더러, 조금 읽었던 글들에서도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더 그랬을 것. 나란 사람은 그저 자기가 읽은 글 바깥은 보지 못하는, 현실적 감각이 둔감하고 사회적 문제의식이 희박한 책상물림인 탓에--송두율의 글이 아니라--‘송두율 사건’에 대해 그 이후는 물론 그 당시에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영화에 나오는 어떤 사람과 술자리에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홍형숙이라는, 이 다큐를 만든 감독은, 무려 7-8년을 이 한 작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닌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 가끔씩,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송두율이었다면, 내가 그를 데려왔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인가 뭔가 하는 곳의 일원이었다면, 하는.
2003년 송 교수가 37년 만에 고향이 있는 남한에 돌아왔을 때, 그의 개인적 감회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겠지만, 구경꾼의 처지에 있었던 나 같은 사람은, ‘어, 왔네’ 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세계적 석학” 운운하며 그를 띄우는 사람들--그를 데리고 온 이른바 ‘진보진영’ 사람들--의 말도 별 공감할 수 없었고(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세계적 석학’이라는 레테르가 난무하는 세상이니 그에게 그 레테르를 붙인다고 해서 뭔 문젠가 싶기도 하다). 그 후 참으로 이상한 구도로 흘러간 사태를 대하면서도, 송 교수가 당한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언제나 그렇듯, 늘 '마음'뿐이지만---뿐만 아니라 송 교수의 처신을 ‘나무라는’ 마음---아무 대상도 없는, 내 마음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지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일을 더듬어 생각해보면, 송 교수가 '북한노동당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 겸 당중앙위원 김철수'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그리고 일찍이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을 인정했을 때, 참 황당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김철수니 노동당원이니 하는 사실 자체가 황당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남한에 들어오기 전에 극구 부인했다가 이 곳에 와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서야 하나하나 ‘자백’한 게 참 어처구니없게 생각되었던 것. 이 사람은 한반도의 분단문제를 그렇게 많이 ‘공부’했으면서도 분단‘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가 그런 식으로 처신했을 때 남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예 감(感)조차 없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남한에 들어오기 전에 다 밝혔어야 할 ‘사실’을, 같은 동료들(?)--정확히 말하면, 그의 입국을 추진했던 사람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건, 자신의 그러한 행적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의 현실감각이란 도대체.......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그가 정세를 '착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집권 이후 남한의 이른바 ‘민주세력’의 힘을 과대평가했고 냉전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 그가 국정원에서, 검찰에서 심문을 당하게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는.
또 하나. 카메라에 잡힌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마치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았다.
착하다고 칭찬받던 아이가 그 ‘착함’을 부정당할 소지가 있는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게 ‘잘못’이라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숨기고 싶어 했던, 하지만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추궁을 당하자 하나씩 실토하는, 숨기고 싶은 것이었지만 악착같이 숨길만큼 ‘영악한’ 애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 ‘착함’만큼은 스스로 부정하기/부정당하기 싫기에, 자기를 믿어주는 부모 앞에서는 ‘잘못’을 털어놓지 못하고, 엄하게 따지고 회유하는 선생 앞에서는 그 ‘잘못’을 실토하는, 그러면서, 그게 잘못 흘러가는 과정이라는 걸 인지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된, 그리하여 서서히 자기 균형마저 잃어가는.
송 교수의 경우 그 ‘잘못’은, 노동당 입당이 아닐까. ‘북한노동당 서열 23위 김철수’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닌데,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북측에서 자기에게 그런 지위를 부여한 것이며, 자기가 그런 직위에 걸맞은 활동을 한 적도 없다고 할 수 있었지만(그것이 사실일 수 있지만), ‘노동당 입당’은 자기 자신의 ‘결단’ 없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북한을 알기 위해, 분단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취한 선택이었든 뭐였든 간에 ‘노동당 입당’이란 자기결정에 따른 행위가 아닐까.
이게 뭐가 문젠가, 북한 노동당에 가입을 했든 독일 공산당에 가입을 했든 이게 문제될 게 뭔가, 이런 것을 문제삼는 것이야말로 ‘냉전질서’와 ‘국보법’이 우리 속에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누구처럼 말할 수도 있을 것. 사실, 나도 이러한 주장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쪽이다. 노동당원이든 공산당원이든 그건 신념의 문제요,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 남한에 들어와 설사 당의 지침에 따라 활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지 않으면 오히려 공공연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조합된 ‘자유민주주의’에 걸맞은 체제 아닌가 하는 생각(체제를 변혁하려는 신념이나 그러한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배제되는 '자유'와 그들을 배제함으로써만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가진 체제란..... 그런데 이게 바로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들이 아닌가).
송 교수가 남한에 들어올 생각을 했다면, 차라리 이렇게 치고나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노동당원인 이상 그때나 지금이나 남한에 들어올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는 조금 다른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조금 다른 수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송 교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송 교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생각. 노동당에는 수 십년 전에 가입했고, 그 후 당원으로서 충실하게 활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렇게 미리 밝힐 수도 있었는데, 송 교수는 그럴 수 없었다. 자기는 ‘착한’ 사람이라고 주장해왔고, 또 그렇게 인정받아 왔기 때문에.
여기서 그 ‘착함’은 바로 ‘경계인’이라는 것. 이는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나아갈 길로 부여한 자기규정이자 또 타인들로부터 그가 인정받는 근거였지 않던가. ‘노동당원’이라는 것과 ‘경계인’이라는 것이 양립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과거 한때 노동당원이었다고 해서 ‘경계인’으로서 자기 위치를 잡지 못하란 법도 없는데, 그는 이 대목에서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혼자 힘으로 싸워보지 못한 어린 아이처럼.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바깥에서 보는 눈이 자행하는 ‘재단’일 수 있을 터. 이런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야 할 터인데,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이상, 송 교수의 잘 납득이 안 되는 태도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겠기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것. 이건 송 교수 개인의 문제이고 이 영화가 제기하는 중심문제는 다른 데 있으니, 다음에는 그걸 가지고 좀 이야기하겠다. (찌질이가 사용했던 효과음을 넣어서 말하자면) 기대하시라 두둥^^^
'異山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씨 인터뷰 (14) | 2010.04.14 |
---|---|
<경계도시 2>를 보고 든 생각들(2) (7) | 2010.04.14 |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 (4) | 2010.03.22 |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12) | 2010.03.18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2) | 2010.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