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異山

뉴욕에 갔다 왔다


P의 중국친구가 하버드에 와 있어서, 중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한 번 들리라고 해서, 나도 '덩달아' 뉴욕에 갔다 왔다. 미국 땅이 넓고 넓은 게, 같은 나라인데도 비행기로 여섯시간을 날라야 닿는 곳이라니...

P가 짜놓은 일정에 따라 이곳 저곳 좇아다니긴 했는데, 마음은 계속 '집으로' 였으니 여행 다닐 몸도 마음도 안 되는 모양이다. 

복잡했다. 컸다. 심지어 괴기스러운 곳도 있었다. 모두들 가기를 겁내하는 지역은 근처에도 안 갔지만 지저분했고, 어지러웠다. 물론 워낙 넓은 곳이니 조용하고 따스한 곳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천국'에 속한다는 걸 실감했다.

물론 볼거리는 넘쳐났다.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들. 덕분에 책에서만 보던 그림들, 차라투스가 보여준 그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인상을 받은 것이 많으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샤갈 그림이 인상적이었고, 모네의 대작이 사진으로서는 실감할 수 없는 장관을 보여줬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으로는 급하게 휘둘러보기에도 벅찰 정도로 볼거리들이 넘쳤으니, 게다가 애랑 같이 다니니 마음 가는 곳이라 해서 마냥 죽치고 앉아 있을수 없었던 탓에 그림들이 마음에 쉽게 담길 수 없었던 것일지도.

P에게 끌려들어간 중고서적상에서 애랑 나는 웬 횡재냐 하는 마음으로 책들을 몇 권 샀다. 차라투스가 왔다면 돈을 탈탈 털고 사고 싶었을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림책들. 수십년 전에 나온 것에서부터 최근에 나온 것까지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종이값만 해도 10만원은 족히 될 법한 책들이 1-2만원이면 살 수 있었으니. 애도 나와 취향이 비슷한지 아니면 수준이 비슷한 것인지 고흐와 렘브란트에 끌린다고 해서 이들 책 각각 한 권, 애가 또 끌린다고 하는 모네와 세잔느 책 한 권씩, 거기에다가 스타워즈 관련 책 한 권, 이렇게 두꺼운 책 다 섯권을 사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다음부터는 그저 무거운 짐일 뿐이었지만.

P 덕분에 못 가볼 곳도 가보았지만 마치 안 갈 데를 간 듯한 태도를 고수한 탓에 여행으로 다진다는 '가족의 화합'은 더 깊은 균열로 대체되고, 다시는, 다시는, 먼나들이는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만 하고 왔으니, 내게 여행은 그저 힘들고 귀찮기만 한 일이 되고 만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얼마전, 역시나 P가 마련해놓은 플랜에 따라 따라간 요세미티란 곳에서는 순간이나마 마음의 트임을 느낄 수 있었으니, 내게는 시간만이 만들어놓은 자연이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하는지도.

'異山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김민웅: 미친 교회, 하나님과 대적하다.  (0) 2011.08.25
호를 하사하다.  (9) 2011.08.06
내 생활  (7) 2011.04.08
고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1) 2010.10.16
왜 책을 읽어야 하지?(1)  (4) 2010.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