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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

글쟁이들은 그림을 이렇게도 읽는군요.

 

예술가들은 비평을 무척 꺼리나 봅니다. 왼쪽 그림은 페레 보렐 델 카소(Pere Borrell del Caso 1835~1910)라는 스페인 화가가 그린 [비평으로부터 탈출(Escapando de la critica)]이라는 그림입니다. 얼마나 비평가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으면 이런 그림까지 그렸으랴 싶습니다. 비평을 상징하는 액자로부터 벗어나는 저 탈주 소년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이죠? 비평이 얼마나 갑갑했길래...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왼편 그림에서 보듯이 작가만 힘든게 아니라 비평가조차 부득이하게 악역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네요.  

 

최근에 만난 글 잘쓰는 이로서는 소설가 권여선이 있습니다. 언어나 사유의 유희가 아닌 깊은 고민과 신중함에서 비롯되었을 법한 절제된 문장이 돋보이는데, 특히 [분홍 리본의 시절]이라는 좀 '야리꾸리한' 제목의 단편소설집이 인상에 남네요. 일독을 권합니다.

 

권여선의 처녀작 [푸르른 틈새]에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 주인공이 '공활'을 시도하지만 힘겨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 경험이 떠오르더군요.  학업능력 부족으로 '짤린' 후 부천 공단에서 '공활'을 시작하려는데 여러 공장을 돌아다녀도 번번이 퇴짜를 맞는 겁니다. 어느 공장에선가는 보자마자 담박에 "너, 운동권 학생이지?" 라고 묻습디다. 위장취업이 많던 그 당시, 공장주들의 '먹물 든 놈 골라내기' 기준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습니다. ..... 손만 보면 정답이 나오는 겁니다. 여차저차해서 겨우 취업한 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역시 손이 변하더군요. 먹물 든 놈의 손이 아닌 노동하는 사람다운 손으로요. 

 

손 이야기로 분위기를 잡은 것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을 소개하기 위해서이고, 권여선을 언급한 것은 또 다른 글 잘쓰는 작가인 신경숙을 끌어들여 저를 대신하여 그림을 읽히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고흐의 그림은 강렬한 터치로 유명합니다만, 초기 작품은 의외로 어두운 분위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목사가 되고픈 고흐가 탄광촌에서 봉사하던 중 그린 작품입니다. 살신성인의 봉사에도 불구하고 괴팍한 성격 탓에 탄광촌에서 추방되다시피 하지만,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에 대한 그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언젠가 고흐는 이런 편지를 썼었죠.

 

"농부들의 손을 보면 그들이 흘린 땀방울을 느낄 수 있다"

 

저 그림에 대한 읽기를 몇번 봤습니다만, 신경숙의 단편소설 [감자먹는 사람들]에서만큼 차분하게 그림을 읽은 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글쟁이는 이래서 글쟁이구나, 라고 기를 죽게 만들더군요. 그나마 위안받은 것은,  저도 신경숙처럼 그림속 인물들의 손에 주목했었다는 정도죠.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언젠가 광화문의 판넬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저 '감자 먹는 사람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어요. 왠지 그 사람들이 저를 잡아당기더군요.

 

단순한 그림이었어요. 그들은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감자를 까먹고 있었죠. 모자를 쓴 남자도 있었고, 팔소매를 약간 접은 여자도 있었습니다. 등잔불 아래의 그 사람들은 거칠고 강한 선으로 묘사되고 있었습니다. 낡은 의복과 울뚝울뚝한 얼굴은 어두웠지만 선량해 보였습니다. 감자를 향해 내밀고 있는 손은 노동에 바싹 야위어 있었지요.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 복제화를 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에 붙여놓았죠. 현관문을 열고 닫을 적마다 그 그림을 쳐다보면서 생각했어요. 저 사람들의 무엇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까, 하고요. 그들은 막 노동에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등잔불을 켜놓은 걸 보면 밤이 아니겠습니까? 등잔불은 낡은 탁자를 온화하게도 비추고 있었습니다.

 

하루분의 노동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 것일까? 저녁식사가 저 몇알의 감자일까?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무척 풍부했습니다. 태양 아래의 감자밭이 그들 얼굴 위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참에 억눌릴만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눈빛과 손짓과 낡은 의복으로요.

 

어쩌면 나는 그들이 먹는 것이 알감자라는 것에 혹했는지도 모르지요. 기름에 튀겨서 칩을 만든 것도 아니고,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을 부친 것도 아니고, 마요네즈에 버무려 샐러드를 만든 것도 아니라는 점에 말이에요. 그들이 노동에 단련된 굵은 손으로 덥썩 집어먹고 있는 것이 그저 삶아 그릇에 담아 내놓은 순수한 알감자라는 점에 말이에요.

 

저런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감탄을 넘어 질투까지 느껴집니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로 결론 짓고 대강 서둘러 마무리해버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