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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智

이제 농사꾼이 될려나?

처음 순창에 내려왔을 때가 2013년 9월 초니까 이제 2년 7개월이 지났네요. 농사로 돈 벌면서 책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3년 걸릴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예상대로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구하는 농사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아 밭 구하기도 어려웠고 범부형[각주:1] 도움으로 땅 구입까지 시도했지만 마땅한 밭이 나오지 않아 초조해 하던 터에 약 한 달 전쯤 무려 1100평 밭을, 더욱이 이미 친환경인증이 되어 있는 밭을 얻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임대한 300평 밭과 집 앞 뒤에 있는 100평 정도의 밭까지 합하면 약 1500평 밭을 농사지을 수 있어 이제는 자체 소비를 넘어 다른 이들에게 판매할 수 있을 만큼의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자본을 갖추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제까지는 날일 다니며 생활비를 벌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데 농토 넓이가 그 한계를 넘어버려 오직 농사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해결책을 찾던 끝에 '펀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원 산내면에 사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살래'라는 이름으로 펀드를 모집해 농사자금을 미리 마련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그런 것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산내면에서는 여러 농가 및 창작자들과 운영진들이 함께 하여 펀드회원을 150명이나 모집할 수 있지만 제 경우 현재 상태로는 회원을 10명 정도 밖에 모집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또한 생산물의 질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밭이 아직 넓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서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제가 모집할 수 있는 회원은 강요나 협박, 아니면 도움 요청이 가능한 사람들, 생산물이 성에 차지 않는다 해도 인터넷에 불만을 퍼뜨리지 않고 속으로만 삭일 사람들 뿐입니다.

우선 총 6회 택배 발송에 회비 40만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회비의 수준을 판단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제가 보낼 농산물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일반 농산물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가축분에 들어 있을 항생제가 계속 남아 있을 밑거름도 넣지 않고, 흙을 가루로 만들어 땅 속의 생명체들을 사멸시키는 로터리를 이용하지 않고, 검은 비닐로 땅을 덮지 않아 그 뜨거운 여름날 작물들을 헉헉거리게 만들지도, 땅 속의 미생물들을 질식시켜 죽이지도 않고, 또 밑거름을 넣어 비닐을 덮는다면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농약도 치지 않고, 당연히 독성 물질인 제초제도 치지 않고, 또 흙에 염류를 축적시켜 결국 흙을 죽게 만들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키워내는 작물들이라는 점입니다 -- 아니, 제가 이런 생각을 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니! ^^.

해결해야 할 문제가 또 있습니다. 작물을 선정해서 당장 심어야 할 시기인데 회원들이 원하는 농작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산이형과 같은 주부를 고려할 때 한참을 쭈구리고 앉아 다듬거나 요리하기에 번거로운 채소를 많이 심어서는 안 될 것같고, 또 양파나 마늘이나 감자 같이 두고두고 먹기 좋은 작물들은 파종시기가 이미 지나가버려 아쉽기만 하고, 등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부족합니다.

하여, 회원가입의 압박을 느낌과 동시에 압박의 강도를 감소시킬 여러 의견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산이형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해 보니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1. 요사이 스스로 '비'범부로 탈바꿈하려 애쓰고 있는 듯 보임. 하지만 글쓰기 범주에 표시되어 있는 '범부'가 바꿔지지 않는 한 헛된 노력에 그칠 뿐이라는 점은 자명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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