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등학교들이 다 그런지 이 도시의 학교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선생님들은 일종의 ‘학년전담제’에 따라 담임을 맡습니다. 1학년 담임은 계속 1학년을 맡고, 3학년 담임은 계속 3학년만 맡는 식이지요.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반과 담임이 바뀌지 않는 식으로 학교가 운영되는 걸 봤는데, 이곳은 독일과도 다르고 한국과도 다르네요. 정확히 몇 년간 한 학년을 계속 맡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이런 것을 알려면 자료도 보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고 해야 하는데, 나는, 모두 ‘패스’입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학교가 돌아가다 보니 교사들의 ‘전문성’은 더 강화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3학년 담임이면, 3학년 학생이라면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익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지도방법도 충분히 숙달된 ‘3학년 전문가’가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1년에 세 번 나오는 (우리처럼 학생 편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편으로 부모에게 보내든지 아니면 정기적으로 있는 학부모 개별면담 때 줍니다) 보고서(우리식이면 ‘성적표’)의 평가항목들이 아주 세밀하게 짜여있습니다. 가령 언어 영역을 보면, '읽기' '쓰기/스펠링' '듣기/말하기'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 예컨대 '쓰기/스펠링' 항목을 보면, 주제문장과 이를 보조하는 세부묘사들을 사용하여 잘 구성한 절을 쓸 수 있다, 혼자 힘으로 막힘없이 자기 생각을 쓸 수 있다,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지어낸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문학작품을 읽은 느낌을 쓸 수 있다, 지어낸 이야기를 읽고 요약문을 쓸 수 있다,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요약문을 쓸 수 있다, 탐구활동을 한 보고서를 쓸 수 있다, 문법을 잘 지켜 글을 쓸 수 있다, 스펠링에 틀림이 없이 글을 쓸 수 있다 등등으로 평가 항목들이 세분화되어 있고, 또 그 각각에 대해 평균 이상, 평균 중 상위 단계, 평균, 평균 중 하위 단계, 기대한 진전이 있음(이것도 상중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약간의 진전이 있음, 보고서를 낼 수 없는 수준 등등의 방식으로 평가를 합니다. 여기에다가 각 과목마다 교사가 직접 코멘트를 덧붙이고 마지막에 애에 대한 총괄적 평가를 적는 식으로 학생 보고서가 구성되어 있더군요. 이런 보고서를 보면 학부모는 자기 아이가 부족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게 있는데, 매주 금요일(이곳은 토요일은 다 쉽니다)이면 한 주 동안 제출한 숙제와 학교에서 했던 활동의 결과물들을 교사가 일일이 다 체크한 뒤 돌려줍니다. 학부모는 이를 보고 한 주 동안 자기 애가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대목에서 부족한 게 있는지, 예컨대 수학 나누기에서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시간과 정성이 되는 학부모라면 부족한 점들을 집에서 보충해줄 수 있겠지요.
학년 초에는 학년별로 학부모들을 불러놓고 교사들이 1년 동안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어떤 점을 중시할 것인지, 애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설명회를 합니다. 일종의 교육철학과 교육방향, 교육목표와 교육방식에 대한 보고회인 셈이지요.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 꼭 지킬 일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문서화한 뒤 교장도 서명하고 교사도 서명하고 학부모도 서명합니다. 교장은 학교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겠다, 교사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겠다, 학부모는 애들을 어떻게 키우겠다 하는 등등의 내용이 들어 있는 '서약서'입니다.
이처럼 학생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또 학생들이 한 공부와 활동을 매주 점검하고 나름의 교육 방침을 관철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교사에게는 애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온 관심을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시스템 같습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교사들의 임금은 직장인 중에서 그리 높지 않은 편인 모양입니다. 임금은 아마도 각 주(州)에서 정할 터인데, 미국의 거의 모든 주가 재정적자로 허덕이는 판이니(특히 이곳, 캘리포니아 주는 '터미네이터'가 주 재정을 '터미네이트'한 것으로 악명이 높지요), 임금이 더 높아지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촌지’ 같은 건 아예 제도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현금’을 주는 것은 불법입니다. 일종의 상품권 같은 것은 드릴 수 있는데, 그 액면가는 20달러(25달러?) 이하여야만 합니다.
율이 4학년 개학날 수업을 마쳤을 때 한 학부모가 선생님께 장미 한 송이(딱 한 송이!)를 드렸는데, 선생님이 애들을 배웅하는 내내 그 장미를 손에 들고 계시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율이 옆반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면 교실 문 앞에 서서 애들과 '허그'하거나 '하이파이브'하면서 애들을 배웅합니다. 이런 광경,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보기를 기대하는 건 아직은 과욕이겠지요? 아무리 '근무여건'이 열악하다 하더라도 교사 개인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일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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