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중반을 넘어서야 실질적인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됐다.
프랑스다.
(2002년인가... 회사업무로 필리핀을 이틀 동안 다녀온 적은 있다)
10/11(토) 첫째 날
스스로도 조금은 그랬지만, 아내와 큰 딸이 염려했던 것에 비하면,
나는 빈틈없이, 정해진 시간과 절차를 지키며 루프트한자에 올랐다.
뮌헨을 거쳐 깐느로 간다.
다소 이른 시각에 티켓을 받아서 통로 쪽 좌석을 얻었다.
내가 앉은 통로 쪽 스튜어디스는 노랑머리에,
간호부장이 딱 어울릴 것 같은, 전형적인 게르만 계통의 독일 아줌마다.
저 건너편 통로의 스튜어디스는 단발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미소가 일품인 프랑스계 흑인 아가씨다.
점심식사가 나온다. 메뉴가 비빔밥과 쇠고기다.
비빔밥을 택했다. 그럴싸했다.
둘러보니 외국 사람들 가운데도 비빔밥을 먹는 사람이 꽤 있다.
안내방송은 독일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나온다.
점심을 먹고, 짧은 잠을 잔 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있다.
인천항에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방조제에 갇힌 서해안 갯벌 얘기들을 읽다니...
뒷좌석에서 두 여자가 대화를 나누는데, 독일어다.
하지만 무슨 주제인지 알 수가 없다.
앞좌석에는 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애가 장난을 걸어온다.
내가 읽는 책장을 잡으려고 해, 두어 번 오리 흉내를 내주었더니,
자꾸 놀잔다. 이 꼬마의 말도 독일어다.
근데 이놈이 ‘du....’어쩌고 그런다. 싸*지 없는 놈이다.
책 읽는데 방해가 되어 모른척했더니 내 옆 자리 할아버지로 놀이상대를 바꾼다.
고도 1만 600m, 시속 800km로,
찬 공기를 가르고 나아가는 루프트한자 비행기 안에서 읽는 김훈의 문장은,
자주 미끄러져 내 머리 속을 빗나간다.
그래서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 경우가 잦다.
더 쉬운 일을 해야겠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비행기는 우랄산맥을 넘고 있다.
전체 여정의 절반을 지났다.
..........................................
중간 기착지 뮌헨에서는 공항을 떠나지 못했다.
대개의 공항이 그렇듯, 인근은 황량했다.
공항 안 맥주가게에서 몇 몇 한국 사람들과 맥주만 한잔했다.
내가 가게점원에게 독일어로 말했더니, 독일어로 대답한다.
근데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괜히 어설프게 독일어 하지 말아야겠다.
.......................................
한국시각으로 새벽 5시.
오전 9시에 집을 나선지 20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뮌헨에서 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
거의 하루 종일을 비행기 안이나 공항에서 보내고 있다.
무척 졸리다. 자고 싶다.
니스공항에서 깐느로 가는 차편이 없다.
동행했던 대행사 직원들이 예약한 차편에 묻어 탔다.
도움을 받았다.
만일 이들과 동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대행사 직원들의 숙소는 깐느 역 근처.
내가 묶을 곳은 또 좀 더 간단다.
그래서 알제리 계통처럼 보이는 기사에게 부탁했더니 30유로를 달랜다.
‘*발라~ 뭔 대리비가 이렇게 비싸.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한국시각 새벽 7시.
현지시각 저녁 11시.
숙소에 도착하다.
22시간만이다.
10/12(토) 둘째 날
깐느 해변을 걷기로 하다.
발길이 닿는대로 걷다가 몽 슈발리에(Mon-Chevalier)에 갈 수 있다면 가보기로 했다.
해변에 나가서 처음 본 것은 어느 건장하고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다.
숄을 걸치고 해변으로 향하는 그녀는 맨발이었고,
얇은 숄 밖으로 비치는 그녀의 몸은,
안에 뭔가를 입기는 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바닷가에 이른 그녀는 숄을 훌쩍 벗어 재끼더니,
파도가 제법 센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리낌이 없었고,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건강하고 당당했다.
‘아! 유럽에 왔구나.’ 그런 느낌이 얼핏 왔다.
걷다보니 가족단위로 많이들 나와서 햇볕을 쪼이거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흠칫 당황스럽게 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을 내놓고 일광욕을 하는 여인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
눈길 주기 민망해하다가 니스나 깐느 해변에 가면 이런 풍경 많다는
블로그 정보 글이 떠올랐다.
그 글의 마지막은 이랬다.
‘한국 사람들아. 흘끔흘끔 보지 말고 그냥 봐라. 괜찮다.’
그래서 그냥 봤다.
하지만 내 눈길이 자꾸 도망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이 중년들이었고, 젊은 여성은 어쩌다 보였다.
‘해운대나 경포대보다 조금 큰가 보다’하고 걷기 시작한 깐느 해변.
하지만 오산이었다. 끝이 없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걷다가 어딘가 이상해서,
버스 정류장에 있는 안내지도를 자세히 보았더니,
반대 방향으로 왔다.
숙소에 들어가 장을 봤다.
물, 와인 한 병, 바나나, 그리고 노란 사과 세 개.
장보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정도면 굶진 않겠다.
근데 난 왜 프랑스에 와서 자꾸 청년 호치민이 생각이 날까?
고질이자 청승이다.
10/13(월) 셋째 날
MIP-COM행사 첫날이다.
행사장인 Canne de Festival에 도착해 등록을 하고,
전도연이 걸어 들어갔던 계단도 봤다.
그저 그랬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크기나 웅장함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다.
점심시간이 됐다.
대행사 사람들 신세지기 싫어서 혼자 걷다가,
해변 레스토랑에 들어가 홍합요리를 시켰다.
짭짤하게 삶아낸 그냥 홍합이다.
메뉴판에 ‘선원방식으로 익힌...’이라고 설명되어 있더니
그래서 그런지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나름 우아하게 먹었다.
식당 앞에 펼쳐진 지중해는 햇살이 눈부시고,
바로 앞 모래위에서는 잘 생긴 남자와 예쁜 프랑스 여자가 정겹게 바게뜨를 먹고 있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행사장을 둘러봤다.
별거 없다.
행사장을 나와서 몽 슈발리에에 올라갔다.
몽 슈발리에는 행사장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고풍스런 마을이다.
성당 아래 의자에 앉아 깐느 해안을 한참 내려다 봤다.
성당에서 30분마다 종을 친다.
좋다.
내려오는 길에 생폴(Saint-Paul) 마을에 가는 버스가 어디에 서는지 알게 됐다.
모레는 거기에 가야겠다.
내일은 모나코에 갈 생각이다.
나에게 길을 묻는 여자가 있다.
가르쳐주긴 했으나, 그 쉬운, 길 가르쳐주는 영어를 하는데
제대로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참나.
숙소로 돌아오는 셔틀버스에서 내리면서 기사에게 ‘Merci Beaucoup!'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사가 뭐라고 길게 응답한다.
못 알아듣겠다.
웃으며 손만 들어주었다.
그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든다.
파리와 같은 큰 도시는 어떨지 모르지만,
여기 깐느에 와서 느낀 것은 자동차가 대부분 작고, 도로도 좁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좁고 복잡한 길을 자동차와 사람들이 참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지킬 것은 지키고, 약간의 융통성도 있고, 사람을 배려하고...
그러면 가능하겠다.
근데 그게 어디 쉽나. 그게 바로 문화의 힘이겠지.
숙소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와인을 마신다.
꽤 취한다.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10/14(화) 셋째 날
행사 두 번째 날이다.
오전에는 현장을 둘러봤다. 제법 꼼꼼하게.
유럽 TV속에 우리 미래는 없다.
그리고 모나코는 포기하고 생폴 마을을 찾아 나섰다.
오후를 그곳에서 좀 한가하게 보내고 싶었다.
나름 주도면밀하게 찾아낸 생폴 행 버스.
종점이 생폴이었다.
강단져 보이는 중년여인이 운전하는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거쳐 어떤 야트막한 산의 꼭대기로 잘도 올라간다.
이윽고 도착한 종점.
그런데, 사진으로 본 생폴 마을의 모습이 없다.
버스를 운전했던 프랑스 아줌마 운전사에게
'여기가 생폴인가?'라고 물었다.
‘여기가 생폴이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그래서 지도를 다시 펼쳐 살펴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생폴 드 방스(Saint Paul de Vence)!
그러고 보니 프랑스는 천지가 생폴이다.
생폴 뒤에 붙는 단어가 중요한 것이다.
운전사 아줌마에게 다시 물었다.
그 노랑머리 아줌마는 아주 인상 깊은 방식으로 가르쳐주었다.
‘오늘 오후 내내 시간이 있느냐?’
‘버스와 기차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어떤 것을 이용할거냐?’
그러더니 종이를 꺼내들고 직접 써준다.
“깐느 역에서 000번 버스를 타고 ***에서 내린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 다음에 그곳에서 000번 버스를 다시 타고 생폴까지 가면 된다.”
깐느 역 가까이 오자 나를 불러서, 버스 정류장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훌륭했다.
어떻게든 다시 생폴을 찾아가려고 깐느 역 앞에 있다가
니스로 가는 일행을 만났다.
혼자 움직이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그와 함께 니스로 향했다.
니스에서는 미니 열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기만 했다.
니스는 크다.
그러나 걷고 체험하지 않으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동행자가 있는 것도 제대로 된 체험여행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
내일은 파리로 떠나야 하나 보다.
(왜 ‘한다’가 아니고 ‘하나 보다’일까....^^)
아쉽다. 이제 겨우 ‘Merci’와 ‘Bonjour’가 입에 익어 가는데...ㅋㅋ
Saint Paul de Vence를 못 본 것이 가장 아쉽다.
10/15(수) 넷째 날
호텔에서 출발이 조금 지체되는 바람에 서두르기는 했지만
깐느 역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예약된 번호의 객차도 찾고 좌석도 찾았다.
2층 창가 좌석이다.
그런데 역방향이다.
예약해준 여행사 직원을 원망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프랑스 TGV에는 등급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1층은 2등석이고, 2층은 1등석인데,
1등석에서도 순방향은 비싸고 역방향은 좀 싼 것이다.
내가 예약한 자리가 1등석에 좀 싼 좌석이었다.
깐느 다음 역인 생 라파엘(St Rapael)역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타더니
내 좌석 주위를 두리번거리신다.
그러더니, 내 옆자리에 손가방을 내려놓으신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윽! 품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꺼내신다.
할머니가 주섬주섬 짐을 풀면서 나에게 뭐라고 하셨는데,
마음이 황망하여 ‘봉쥬르’라는 단어도 떠올리지 못하고,
눈웃음과 함께 고개만 끄덕였다.
참 운도 없다.
창 밖에서 배웅하는 한 여자.
딸인가 보다.
오랜만에 딸 보러왔다 가시나 보다.
에고....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우락부락한 아저씨 보다는 낫지 않아.
근데 이 할머니 행동이 너무 조심스럽다.
손가방을 살 살 열더니 책을 한 권 꺼내서는 조용히 읽으신다.
창밖으로 펼쳐지던 지중해와 해변의 그림 같은 집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내륙으로 접어들었나 보다.
넓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한국의 들판과 다른 점은?
들판에 나무가 많다는 것.
.......................................
리옹 역에 내려 공중화장실을 이용했다.
프랑스에서 적응 안 되고 이해 안 되는 게 이거다.
지하 화장실에서 돈 받는 아저씨 아줌마들이란...
그것도 남자 화장실은 밖에서 다 들여다보인다.
지하철 표사는 곳에서 프랑스 말로(!) 표를 샀다.
10장 묶음으로.
프랑스 여자가 되묻지도 않고 표를 주었다. 캬~
뿌듯한가?
그렇다. ㅋㅋ
그리고 차질 없이,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근데 프랑스 지하철은 후지다.
노선 14번 지하철은 객차 사이가 문도 없이 통해있고 소음이 많다.
갈아탄 노선 12번 지하철은 객차 사이는 닫혀있지만
내릴 때는 직접 열어야 한다.
환승하는 곳은 또 왜 그렇게 길고 복잡한지.
신도림역은 저리가라다. 상대도 안 된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동굴 같은 환승통로를 한참 돌았다.
나의 목적지였던 아베스(Abbesse)역은 또 어떻고.
지하철을 내려서 지상까지 족히 5~6층은 올라온 것 같다.
꼬불꼬불 종탑 올라가듯이.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앞에 가던 미국인 일행도 헉헉거리고,
가방을 든 나도 헉헉!
한국이 이런 건 훨 잘돼 있다.
크고, 깨끗하고, 시원시원하게.
근데 밖에 나온 순간 맞닥뜨리는 풍경은?
흠.... 파리네....
하지만 비가 온다.
바람이 불고, 몽마르뜨 거리에 낙엽이 뒹군다.
숙소에 도착해 카운터에 앉아있던 젊은이에게 아베스 역 투정을 했더니
엘리베이터가 있단다.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용이잖아..?’
아 하... 여기가 몽이니까 역이 아주 깊은 곳에 있고,
그래서 일반 승객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하나보다.
.....................................
숙소에 가방을 내려놓고 몽마르뜨 꼭대기에 있는
사크르 꿰어(Sacre Coeur) 성당으로 가본다.
이곳 몽마르뜨는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니,
저만치 어떤 키 큰 시커먼 놈이 뭐라 소리치며 걸어온다.
그리고는 기어이 내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고 고함을 친다.
나름 침착하게, 강력한 포스로 대응했다.^^
사라졌다.
사크르 꿰어 성당.
가볼 만 했다.
파리가 내려다보인다.
이것만으로도 파리에 온 값어치는 한 것 같다.
성당에서 내려와 식당을 찾다가
아시아식 식당이라고 간판에 적어놓은 곳에 들어갔다.
밖에서 들여다봤을 때 주인이 한국 사람처럼 보였다.
‘혹시 한국인인가요?’ 라고 메뉴판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뭐라고 대답한다. 프랑스 말로.
쇠고기와 쌀밥을 주문했다.
걸려있는 그림을 보니 앙코르와트다.
캄보디아에서 왔나보다.
부부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숙소에 들어와 창문을 여니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깐느와는 다른 도심의 수선스런 소리다.
파리구나!
파리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
10/16(목) 다섯째 날
버스를 타고 파리 순례에 나섰다.
노틀담 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 쉽지 않다.
주의 깊게 살폈는데도 결국 반대방향 버스를 타고 말았다.
호텔 카운터 젊은 친구가 잘못 가르쳐줬다.
생폴에 이어 버스타기 두 번째 실수.
프랑스에서 버스를 탈 때는
승차하고 난 뒤에 티켓으로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어떻게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체크를 못하고 내렸다.
무임승차한 셈이다.
노틀담 성당에서 내리는데 버스기사가 뭐라 뭐라 한다.
그래서 내가 한국말로 그랬다.
“알았어. *발라~ 내가 고의로 그랬겠어? Merci!~~”
춥다.
외투가 필요한 날씬데, 준비하지 못했다.
낙엽이 구르는 노틀담 성당.
겉보다 안이 웅장하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장엄하다.
성당을 나와서 퐁네프를 지나 루브르로 향했다.
갑자기 어떤 흑인 놈이 서명을 해 달랜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유니세프에서 아프리카를 도운다’고 한다.
그래서 서명을 했더니 돈을 달랜다.
돈을?
그제야 이 놈이 유난스레 호들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사기구나!’
20유로 달라는 걸 2유로만 주고 돌아섰더니, 계속 20이란다.
단호하게 ‘Non!'하고는 가던 길을 갔다.
2유로 날렸다.
................
루브르.
크긴 크다.
유리 피라미드는 좀 실망했다.
‘굳이 돈 내고 돌아봐야 하나...’
고민하며 한참 앉아 있다가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
공짜 화장실이니까.
화장실 이용하는 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루브르 박물관 화장실도 남자 쪽은 한가한데, 여자 쪽은 길게 줄을 서 있다.
하여튼 프랑스는 화장실 문화에 관한 한 후진적으로 보인다.
아니면 화장실에 대한 개념이 다른 건가?
루브르에서 다시 걷는다.
정원이 나온다. 이게 튈르리 정원인가 보다.
크다. 단풍 든 나무들이 운치 있다.
호수공원도 이렇게 좀 개념 있게 가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춥다.
그러고 보니 나 이외에는 모두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다.
웅크리고 떨며 걸었다.
좌우로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나름의 역사를 품은 듯하다.
거의 모두 작품이다.
콩코드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 잠시 서서 대혁명 시기의 프랑스인 군중들을 잠시 떠올렸다.
저 멀리 비스듬한 방향으로 에펠탑이 보인다.
그리고 걸어가던 방향으로 멀리 보니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이는데,
샹젤리제 같다.
사진으로 많이 보던 풍경이다.
계속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발바닥과 무릎이 아프고 춥기도 해서 지하철을 탔다.
오페라로 간다.
내일 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미리 봐둬야 한다.
오페라는 웅장하고 거대했지만 별 감흥은 없다.
여기저기 널린, 웅장하고 고풍스런 건물들 가운데 조금 더 큰 건물이라는 정도.
공항으로 가는 ‘르와시 버스’ 정류장을 확인하고 나니,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지 모르겠다.
잠시 머물다 오르세 행 버스를 탔다.
오르세는 가봐야 할 같다.
광고 탓일 수도 있다.
기차역을 개조했다는 걸 강조한 그 광고가 나를 강제한다. 제길.
관람료가 루브르 보다 비싸다.
이곳의 관람티켓 주문은 상당히 어려웠다.
프랑스 와서 가장 당혹스런 ‘언어소통불능’의 답답함을 느꼈다.
오르세에는 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그림도 보고, 간단한 요기도 하고.
미술관은 사진으로만 보던 그림들의 실제 크기를 확인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파리코뮌을 그린 그림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강력하게 다가왔다.
오르세를 나와서 ‘이젠 어디로 가나...’고민하면서
버스정류장의 노선도를 보니 한 대가 에펠탑으로 간다.
할 수 없다.
일단 그곳으로 가야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쉽다.
에펠탑은 안 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진이나 TV로 보던 것과 뭐 다른 게 없을 것이다.
높고 크다 뿐이겠지.
그 외에 뭔 의미가 있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처럼.
그래도 버스 노선 때문에 한번 보아야 하는 인연인가보다 하고 버스를 탔다.
근데 버스 기사가 갑자기 승객들에게 뭐라고 안내를 한다.
그랬더니 승객들이 술렁거리다 절반이 내린다.
‘대체 뭐라고 얘기한 거야?’
‘타이어 펑크라도 났나?’
‘나도 내려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다가,
남아있는 승객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버텨보기로 했다.
잠시 후 버스는 예정된 노선을 따라 잘 간다.
(아까 뭐라고 한 거야? 대체.)
버스가 지나는 길에 갑자기 굉장한 건물들이 나타난다.
뭔지 모르겠다.
하여간 파리는 크다.
에펠탑은 정말 커다는 거 외에는 별 감흥이 없다.
에펠탑에서 개선문으로 가야하는데 버스가 안 보여 지하철역까지 한참 걸었다.
가는 길에 선물가게에 들러 선물 몇 가지 샀다.
계산하던 아저씨가 ‘Japan?' 그런다.
‘Korea!'라고 했더니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날이 저문다.
이제 마지막 코스. 개선문과 샹젤리제로 가야한다.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에서 내렸다.
사진과 TV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다. 생각보다 크긴 했다.
추워서 꼭대기에 올라갈 생각은 접고 샹젤리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오~ 샹젤리제’를 걷는다.^^
근데 별거 아니다.
루이 뷔똥과 샤넬 같은 유명한 가게가 많은 번화한 거리일 뿐.
‘박선민의 선물’이 계속 걸려 두리번거리다 BOSS에 들어가 봤다.
괜찮은 가방이 보여 얼마냐고 물었더니 550유로란다.
흠~~ 가능한 표정변화 없이 천천히 나왔다.
많이 걸었다.
그랬더니 콩코드가 다시 나왔다.
결국 하루에 노틀담 성당에서 개선문까지 걸은 셈이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하철 앞좌석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프랑스 남자의 대화모습이 마음에 좀 걸렸다.
조그만 가게에서 기념품 좀 더 사고,
식품가게에서 피자 한조각과 정체를 모를 고기 몇 점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발바닥이 퉁퉁 부었다.
내일은 떠난다.
웬만큼 보고 체험했다.
이 정도면 됐다.
10/17(금) 여섯째 날
마지막 날이다.
아침으로 곰국을 먹었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호텔에 남미계통으로 보이는 늙은 부부가
아침식사 서비스를 한다.
착한 사람들이란 게 말과 눈빛에서 드러난다.
어제는 부인이, 오늘은 남편이 서비스를 하는데,
곰국 맛이 그럴싸했다.
짐을 챙긴다.
와인은 괜한 짓을 했다.
부피가 크고 무겁다.
공항을 통관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호텔 주인에게 공항까지 가는 길을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르와시 버스가 출발하는 오페라까지 실수 없이 도착했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칸이 연결돼 있는 르와시 버스.
파리의 그 좁고 복잡한 뒷골목을 잘도 달린다.
여기 운전사들의 운전솜씨는 일품이다.
시민들의 주차솜씨도 그렇고.
과연 듣던 대로 드골 공항은 크고 복잡했다.
돌고 돌아 마지막 1번 터미널에 도착한 뒤,
길고 긴 워킹머신을 통해 게이트를 찾아간다.
비교적 여유 있게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루프트한자 비행기.
나 빼곤 전부 서양인이다.
대부분이 독일어로 말한다.
가끔 프랑스 말도 들린다.
난 섬이다.
이 많은 유럽인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동양인.
어쨌든 이제 ‘프랑스는 안녕!’이다.
1시간 남짓 뒤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이제 공항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니 여유가 생겼다.
구경을 겸해서 공항 로비를 걷다가 원하던 곳을 발견했다.
유리로 막혀있는 그 안에 들어가서 구름과자를 먹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본다.
그리고 시간을 계산하며 공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
여유 있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프랑크푸르트를 이렇게 지나가게 되는구나...’
시간에 맞춰 탑승게이트로 나간다.
그런데 탑승게이트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다.
관문 하나를 통과하면 또 다른 관문이 나타난다.
멀다. 걷고 또 걸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짐을 들고 거의 뛴다.
그 와중에 중간 중간에 짐 검사를 또 하고, 표 검사도 또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여유부릴 일이 아니었구나...’
뒤늦게 후회된다.
'공항에서는 일단 탑승구 앞까지 가고 난 뒤에 뭘 해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겁지급 최종 종착지인 C16번 게이트 앞에 도착했더니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기석에 앉아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동양인들이다.
뭐랄까... 순간 ‘나니아의 옷장’을 지나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탑승수속이 곧바로 시작돼 비행기를 타니,
자기 자리를 찾는 분주함 속에 들리는 것이 온통 한국말이다.
그들이 작게 하는 말도 잘 들린다.
프랑스 말은 그렇게 귀를 쫑긋 세워도 잘 안 들리더니...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들이다.
편편한 얼굴 윤곽, 검은 생머리, 맨드라한 눈.
조선 종자들이다.
‘이제 같은 무리에 섞였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낯선 느낌이 교차한다.
어느 아저씨는 자기 자리에 왔으면서도 선 채로 크게 말했다.
“아~~ 오늘 족발 하나 먹을라카다가 비행기 못 탈 뻔했네.”
억센 경상도 사투리다.
일행인듯한 아주머니 한 무리가 좋아라 한바탕 깔깔 웃는다.
갑자기 파리로 오던 TGV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조심조심 자리에 앉아, 강아지에게 떠들면 안 된다고 살살 말하고,
긴장된 절제로 책을 조용히 꺼내 읽으시던 프랑스 할머니.
비행기가 이륙하자 사람들은 신발을 벗더니,
앞에 있는 모니터를 켜서 영화를 본다.
거의 모두. 일제히.
역시 한국사람들이다.
나도 이제 영화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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