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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또 무슨 일이 있었나 .... 글쎄 .... 전쟁이 몇 년 동안 있었지? 4년. 그래. 참 길기도 했네 ....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정말 전쟁 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 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 색이지 ..... "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 중에서
 

최근 개봉한 '흑백' 영화 의 출연자 중 한사람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흑백 영화에서는 다른 것에 시선이 안가고 인물에 시선이 가는 것 같다. 눈 한 번 깜빡이는 것, 입술 하나 움직이는 게 칼라 영상보다 훨씬 눈에 잘 띈다."

이 발언에 착안한다면, 전쟁터에서 붉은 피만 눈에 띈다고 느꼈던 저 여인은 .... 흑백영화 속을 헤매듯 전쟁을 치른 것 아닐까요? 전쟁은 그녀에게 전투의 장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환상의 장을 제공한 것이겠지요. 아뇨. 자신의 붉은 피를 그 붉음에 섞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환상을 창조했던 거 아닐까요?

다만, 그 '환상'이 무척이나 참혹하다는 게 문제겠죠. 그래서 ..... 저 책 곳곳, 흰 종이와 검은 글씨의 흑백 사이사이에 붉은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 듯 느껴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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