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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

낯설게 하기 1.

 

해외 유명 화가 혹은 유명 미술관의 국내 전시회를 가보신 적이 있나요?
'도떼기 시장'이 이런 건가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관람객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표정들은 또 어찌나 진지한지, 아무리 길어야 작품당 관람시간이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뭔가 승부를 보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사생결단(?)으로 전시회로 몰려들까요?

벤야민은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가 펼쳐지는 스크린과 그림이 놓여있는 캔버스를 비교해보라. 캔버스는 관객을 관조로 초대한다. 캔버스 앞에서 그는 자신을 연상의 흐름에 내맡길 수 있다." 
(이하, 컬러 강조체 인용문은 모두 김경식 번역본에서 발췌한 것임.) 

맞는 말이죠. 하지만 이건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사유를 펼쳐가던 벤야민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유명 작품을 '관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힘들죠.

그림 보기가  오히려 더 편해지긴 했습니다. 성당 한 구석에 어두침침한 촛불 조명을 받아가며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 배치 전문 큐레이터/조명전문가 등이 합작하여 극히 효율적으로 전시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관람객들에게 떠밀려가며 스쳐지나가듯이 방습/방탄 유리로 보호된 그림을 보는 시대를 벤야민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벤야민은 같은 글에서 이런 의견도 밝혔습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의 여러 방법과 더불어 예술작품의 전시 가능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리하여 예술작품의 양극 [제의가치와 전시가치] 사이에서 일어난 양적인 변동은 원시시대에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예술작품 본성의 질적인 변화로 전환된다.....(중략).... 오늘날 예술작품은 그 전시가치에 놓여있는 절대적인 비중을 통해 전혀 새로운 기능들을 지닌 형성물이 된다. 이 새로운 기능들 중 우리가 잘 아는 기능, 곧 예술적인 기능이 [지금은] 두드러지는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 기능을 부차적인 기능으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의가치' 즉 작품의 가치가 적으나 (혹은 보이지는 않으나) 그 작품을 숭배하게 만드는 분위기에서, 작품의 가치는 보이지만 작품에 대한 숭배는 적은 '전시가치'의 분위기로 바뀐다는 거겠죠. 이는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가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벤야민은 판단합니다.

근데, 벤야민 요즘 전시회 풍토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못했을 것 같습니다. 벤야민이 최근의 풍토를 상상할 수 있어서 원고를 교정한다면 이런 글을 덧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회화라는 예술작품에 한정할 경우, 20세기 후반부터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 본성의 질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인 바, 제의가치는 물론이고 전시가치조차 부차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으로 존재할 뿐이며 '전시가치'가 본질적 기능으로 부각될 지도 모른다. 전자가 기술적 복제에 따른 것이었다면, 후자는 관람객의 니즈를 파악한 전시 전문가들의 상업적 능력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라고요.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문화 그 자체를 숭배한다기 보다 '문화 행위 그 자체'를 숭배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거지요.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고흐의 그림을 감상한들 뭔 느낌이 있을까요. 악담을 하자면, 인터넷이나 화보집에 봤던, 혹은 소문을 들었던 작품을 본다는 그런 문화행위에 경의를 표할 뿐이겠지요. 이러한 분위기는 관람객들로 붐비지 않는 조그만 전시회에서도 많이 들어나는 듯 합니다.

귀족이나 성직자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던 중세 화가들과 달리, 제의가치를 나름 존중하던 근세 화가들과 달리, 현재의 화가들은 생존방법을 달리 택해야 할 듯 싶습니다. (계속)
    

(서상익, <길들여지지 않기>, 2010년작, 145.5 X 112.1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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